길에서 생기는 친구
출근 길, 지하철역에서 나오면 야구르트 아줌마가 계신다. 비가 오는 날이면 계단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내려와서 꺾으면 늘 같은 자리에 계신다. 그리고 그 옆에는 metro라는 신문에서 일하시는 것으로 추정되는, 초록색 metro 조끼를 입은 아주머니가 함께 계신다. 어제 먹은 윌이 효과가 좋기에 오늘 두 개 사서 먹을 생각으로 “윌 2개요”했는데 야구르트 아줌마는 안계시고 metro 아줌마가 “2,800원이요” 하셨다. 평소보다 늦게 출근을 해서 아줌마는 출장을 가시고 metro 아줌마가 대신 판매를 하고 계셨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2,800원이요.”라고 하시고는 봉투에 윌을 담으려고 하셔서 지금 주인이 없어서 카드가 안 된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냥 야구르트 아줌마가 계신 줄 착각할 정도. 얼마나 많이 일을 봐주셨기에 이런 자연스러움이 나온 걸까. 윌이 사람들이 자주 사는 거라 그런 걸까? 왠지 다른 제품을 산다고 했어도 자연스럽게 계산해주셨을 것 같다.
우리집 근처 오거리 약국 앞에는 몇십년간 그 자리에서 과일을 파는 할머니가 계신다. 노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그곳에도 야구르트 아줌마가 계신다. 서로 과일도 봐주고 야구르트도 봐주고. 야구르트 아줌마도 한 결같이 그 자리에 계신다. 때로는 다른 아주머니들도 모여 계신다.
몇 년 전,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우리집에 오는 길목에 분식집이 생겼다. 엄마가 퇴근길에 들려서 한 번씩 음식을 드시더니 어느새 언니 동생 사이가 되셨다. 덕분에 그 앞에 있는 세탁소 언니랑도 친구가 되셨다. 서로 나눠줄 수 있는 게 생기면 나누는 사이가 되셨다. 분식집은 주인이 본인이 가게를 하려고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그만하시게 되셨지만 여전히 시간이 맞으면 주말농장도 같이 가고 산책도 같이하는 친구가 되셨다. 엄마는 떡볶이, 세탁소라고 그분들을 부르고 그분들에게 엄마는 홍대언니가 되었다.(엄마 직장이 홍대라서.)
길에서, 동네에서 이런 일은 쉽게, 자주 볼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나고 자란 동네는 그렇다. 옆집이랑도 인사를 안 하고 서로를 경계하며 사는 요즘 세상이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이런 연대가 있다. 길에서 자연스레 생기는 친구가 있다. 계산하지 않고 돕고, 함께하며 즐거워하는 관계들이 있다. 이런 관계들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고, 생겨나면 좋겠다. 한 마을이 같이 아이를 키운다던, 학교를 끝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길목에서 만나는 어른들 모두에게 인사하던 내 초등학교 시절의 모습들이 살아나면 좋겠다. 할아버지 친구 쌀집, 차씨네. 명절이면 꼭 할머니의 이북표 녹두전을 나눠드렸던 정육점 아줌마 등. 그 시절과 그분들이 그리운 오늘이다.